붓다 로드 52회 – 인도 불교의 멸망

이케아가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배경에는 그에 대한 대항마가 없었기 때문이다.이슬람 세력이 인도에 왕조를 건립하는 동안 인도 불교는 이에 맞선 세력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불교는 독신 주의였으며, 상업 기반이며 합리적인 신분제를 부정하지만 힌두교는 결혼 주의 농업 유목 기반인 주술적이고 신분제에 따른다.이슬람 교역 차단에서 상업이 무너지면서 8세기에 진출하고 10세기 말에는 아프가니스탄에 왕조가 성립되어 인도 내륙의 델리에 노예 왕조(1206-1270)가 성립되어 1203년에 그려져라마 시마 사원이 파괴되고 인도 불교는 멸망한다.이슬람에 대항하는 군사력, 지도자가 없었던 것일까..이슬람의 융성에 힘입어 불교는 점점 힌두교를 닮아 간다.지지 기반의 상업이 무너지면 불교는 힌두교의 농업 유목에 의존하고 주술성이 짙어진다.힌디어화된 불교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다.바라문의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힌두교를 힌두의 요소를 받아들이고 갑자기 바뀐 불교가 이길 수 있었을까?소승, 대승의 치열한 구도 정신이 사라지고 밀교에 흡수된 뒤 힌두 파인은 가속하고 나중에는 변별력마저 상실할 정도로 된다.인도 북부 지역은 불교가 성한 지역이며, 중남부는 힌두교가 융성한 지역이지만 이슬람이 인도 북부 지역에 침투하고 영토를 점령한 뒤에 코난을 들이대고 불교가 먼저 타격을 받는다.인도의 4대 사찰원으로서 빅라마시다, 나랑다, 네덜란드 푸티, 바즈라사나 사원이 있지만 빅라마시다 사원이 가장 크기 때문에 이를 멸망을 인도 불교의 멸망 시기(1203년)으로 산정한다.사원을 파괴하는 이유는 저항의 구심점을 파괴하고 유민을 자포자기하기 위해서이다.빅라마시다 사원이 파괴되고 남아 있던 사람들이 티베트에 건너 티베트 불교를 활성화시킨다.용수 보살의 중도 사상에 대한 잘못된 오해도 한몫 했다.깨달음을 청할 때는 수행의 도약의 발판이지만 힘이 약할 때는 타협하기 쉬운 조건의 사상이다.한편 끝까지 살아남아 인도 해방을 이끈 간디의 자이나교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엄격 주의, 보수적 집단이기 때문에 가능했다.즉 불교는 시장을 주도할 수도 없고 따라가기도 못 했다.이슬람교는 결혼주의인데 신분제를 부정하고 알라 신만 믿으면 평등하다.불교도가 힌두교에 편입되면 카스트 제도의 불가촉 하늘민에 떨어지고 이슬람에 편입되면 양민이 되므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슬람에 개종하기 쉬운 조건이다.멸망 후에도 불교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기록도 있다.땅 공 선현(1300-1361)는 인도에서 출발하고 중국을 거쳐서 금강산에 도착해서 향로에 향을 사다.인도 속에서도 새 불교 운동은 있었다.안 베도 카루(1891-1951)이 주도했으나 기존의 불교와 전혀 다른 하위의 카스트가 합류한다.과연 불교가 독립 종교로 인정되는가?관혼상제, 통과 의례가 없기 때문이다.한편 명상 주의는 전 세계에 펼치는데 아직 단정은 어렵다.